“여왕이라고 부르면 돼.”

곤란함이 지워진 얼굴에는 약간의 후회스러움과 또 약간의 후련함이 있었다.
그것은 어린 소녀의 얼굴에 떠오르기엔 지나치게 복잡한 감정들이었다.

그 순간 사무엘의 눈에는 그녀가 다 자란 어른처럼 보였다.
어째서인지 앳된 얼굴에 자신 만큼, 어쩌면 자신보다
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.

나무 그늘에 서 있는 그녀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던
나뭇가지들이 바람결에 흔들리자 그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내려왔다.
그 햇빛은 절묘하게 그녀의 머리 꼭대기를 비추었다.

그것이 마치 빛으로 구워 낸 왕관처럼 보였다.

-

“카호는 좋아하는 게 뭐야?”
“여왕님이요.”
“음. 좋아하는 장소는?”
“여왕님이 계신 곳이라면 저는 어디든 좋습니다.”
“으음. 그럼 좋아하는... 날씨는?”
“비 내리기 하루 이틀 전의 맑은 날을 좋아합니다.”
“응? 묘하게 구체적이네?”
“여왕님과 처음 만난 날이 그러했으니까요.”